대만 여행 1일차


지난번보다는 뭔가 차분해진 마음으로 공항으로 갔다. 자동발권이 안되서 와리가리를 잠시 하다가, 셀프 발권을 마치고 수속을 마쳤다. 이번에는 짐찾기가 귀찮아서 그냥 들고 타봤는데, 갈때는 면세점 쇼핑도 하지 않으니 딱히 무겁게 느껴지지도 않고 괜찮았던거같다. 아침을 미숫가루를 먹고 나와서 그랫는지 배가 너무 고팠다. 지난번 냉동 김밥의 교훈에 따라 이번에는 위로 올라가서 타코벨을 먹었다. 맛있었는데 시간이 20분밖에 없어서 막 우겨넣고 왔다. 그래도 김밥보다 맛있었다. 


비행기를 탔는데 너무 졸렸다. 기내식을 주는줄 알았는데 안줘서 슬펐다. 기내식을 믿고 타코벨을 먹지 않았더라면 주린배를 붙잡고 대만 공항에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밥을 바로 먹고 타서 그런가 성희형도 계속 졸린지 둘다 내릴때까지 잠만잤다. 목이 아파서 잠깐잠깐 깼었다. 여자친구가 줬던 목베게가 간절했는데 없었다. 내려서는 1819번 버스 표를 샀다. 지난 1회차 여행때 위시빈에 작성했던 버스타러 가는 방법을 다시 읽어봤는데 정확해서 쉽게 표를 살 수 있었다. 왕복 티켓을 사려고 했는데 막상 살때는 까먹고 편도를 샀다. 20~30TWD 정도 손해를 봤다. 배가 아팠다. 우리 형이 쿰척대서 버스한대를 보냈다. 


01

02

03

아기자기한 거실!

깔끔한 부엌!

아늑한 다락! 



점심을 먹지않고 바로 숙소 체크인을 했다. 숙소를 들어갔는데 예약할때 에어비앤비에서 봤던 사진과 비슷했고, 모든것이 좋아보였다. 그때는. 점심을 먹으려고 구글을 찾았는데 무슨 면집을 하나 발견했다. 거기서 먹기로 하고 숙소를 나섰다. Linsen 공원을 가로질러서 갔더니 금방 갈수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소냐,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나는 토이저러스가 있어서 가보고 싶었으나, 일단 뭘 좀 먹고 생각해야하겠어서 통과했다. 


대만의 익숙하고 그리웠던 풍경들을 지나쳐서 한 10분정도 걸었을까? 식당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첫날이라 어리바리 하게 식당에서 서있었더니 앞에 있던 직원이 후르릅후르릅 모션을 하면서 먹겟냐고 물었다. 먹겠다고 하고 자리에 앉았더니, 엄청 조그만 새우탕면이 나왔다. 배가 고팠어서 그랬는지 꿀맛이었다.




사진은 별로여도 꿀맛이었다. 새우탕면의 새우맛을 고도로 농축한 맛이랄까, 고기 맛과 함께 밸런스가 아주 좋았다. 맛있었다. 40TWD 밖에 안할 정도로 쌌다. 먹고 나와서 빙수 가게 하나를 다음에 먹자며 지나쳤는데 곧바로 나온 망고음료 가게는 차마 지나칠수 없어서 망고 음료를 시켰다. 빙수가게와 음료가게가 붙어있었는데, 그 근처에 뭔가 유명한 식당이 있는건지 관광버스가 여러 대 있었고 일본인 관광객들이 정말 많았다. 그 인파를 뚫고 망고음료를 두 개 받아들었는데, 맛의 결과는 나의 압승. 성희형껀 밑에 우유부분이었던가 그 부분이 맛이 없었다.


밥을 먹고 나니 시간이 4시 정도 되었던것 같은데, 첫 날 가려고 했던 지우펀을 가기에 시간이 약간 늦은 것 같아 그대로 지우펀을 갈려고 Zhongshan역으로 갔다. 예전 기억을 되돌려 Zhongshan역에서 이지카드를 사려고 했는데, 작년과는 바뀌어서 환불되는 이지 카드는 Taipei main station에서만 살수 있도록 바뀌었다고 했다. 거기 대만인이 한글로 그걸 설명해줘서 짧은 중국어로 "ni de hanyu hao." (너 한국어 잘한다.)라고 했는데 이분이 중국어로 대답해서 당황했다. 어쨋든 그래서 우선은 토큰같이 생긴 단일권을 사서 메인 스테이션으로 갔다.


이지카드 서비스 센터가 있었는데 이지카드가 정말 비싸졌다. 엄밀히 말하면 비싸진건 아니고, 작년에는 카드만 사서 원하는 만큼 충전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400원을 의무적으로 충전해야한다고 해서 카드값까지 해서 총 500TWD를 의무적으로 살 수 밖에 없었다. 나쁜녀석들. 비쌌지만 어쩔수 없이 샀다. 지난 여행때 나 혼자 지우펀에 가려고 시도를 한적이 있었는데, 그 때의 기억을 되살려 Zhongxiao Fuxing역에 가서 지우펀에 가는 버스를 타려고 했다. 책을 펴기 귀찮기도 해서 기억에 의존해서 정류장 위치를 찾다가 좀 헤멧다. 역사 안에 있는 지도를 보기 위해 지하철 정거장으로 다시 내려갔는데 화장실이 가고싶어서 백화점으로 갔다. 화장실을 갔다가 화장실만 가기 아까워서 그 층에 있던 식당가와 식료품 코너를 구경했다. 백화점은 확실히 아시아가 잘되어있는거같다. 갖가지 음식들을 팔고 있었고 백화점내 식료품점에 갔더니 과자 술 음료수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팔고 있었다. 우리 형이 과자를 좋아하는데 Combos라는 과자를 먹고 싶다며 또 쿰척거렸다. 나도 오징어구이 덮밥을 보고 잠시 정신을 잃을뻔 했지만 왠지 어서 가야할것 같아서 빨리 나왔다. 느낌 적중. 


이제 헤매지 말자며 가이드북을 결국 펼쳤다. 그런데 나의 기억과는 조금 다르게 나와있었다. 천성적인 길치이긴 하지만 왠지 나의 기억을 믿고 싶어 우겨서 내맘대로 갔다. 맞긴 맞았는데 버스정류장을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는 글이 적혀있었다. 이전한 주소는 알 수 있었는데 그게 어딘지를 알 수가 없어서 거기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조금 더 가면 나온다고 해서 더 갔다. 조금 갔더니 그 버스가 마침 서있어서 얼른 뛰어가서 앉았다. 결론적으로 가이드북에는 잘못 나와있었다. 30분마다 오는 버스인데 다행이었다. 탔더니 예상대로 한국인들이 꽤 있었다. 


버스를 한참 타고갔다. 산길을 올라올라 갔는데 이상하게 대만의 7시는 칠흑같았다. 8시쯤 되니까 창밖엔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다보니 멀리 지우펀의 자태가 드러나고, 타고있던 여성 여행객 분들의 탄성이 들렸다. 사실 난 그정도는 아니었다. 정류장 몇개를 더 가다가 지우펀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홍등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둡고 그냥 마을 같았다. 본격적인 구 시가지로 가기 위해 전망대 하나를 잠깐 올라갔다. 전망대에는 대부분 커플들이었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다니는 그 모습들이 아름다워보였다. 하지만 내 옆을 보니 우리형이 있었다. 가던길을 채촉해서 올라가다보니 샛길 같은 것이 있었는데, 옆에 지도를 보니 그게 구시가지 골목이었다. 



시간이 늦어서 그런가 밤에 예쁠줄 알았었는데 오히려 파장하는 분위기였다. 역시나 관광지화가 많이 되어서 그랬는지 먹음직스러운 것도 없었다. 지나가다 본 동네 잔칫상이 가장 맛있어보였다. 동네 어르신들이 김밥같이 생긴 음식들과 알 수 없는 생선요리를 먹고 계셨는데 음식 냄새가 좋았다. 가게는 많이 닫았는데 사람들은 그래도 꽤 있었다. 쓰레기차가 좁은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정말 아슬아슬했다.




지우펀 골목을 계속 따라가니 골목길은 끝나고 숙소들이 몰려있는 쪽으로 빠지게 되었다. 가면 갈수록 짐을 지고 다니는 사람들 보다는 산책나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아마도 그쪽에 묵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더 가면 송대공원이라는 곳이 나온다고 적혀있었는데 온사방이 시껌은 것이 영 갈곳이 못될거같았다. 그래서 다시 지우펀 구시가지로 돌아가기 위해 돌아섰다. 



가는 길에 새처럼 생긴 것들이 세 마리정도 푸드덕거리면서 전등밑을 날아다녔다. 새라기에는 비행 궤도가 너무 불규칙한 느낌이었다. 자세히 보니 박쥐였는데 나방들을 사냥하기 위해 그렇게 날아다녔던것 같다. 지우펀에서 본 것들 중에 가장 신기했다. 배운 질병들 중에 박쥐가 숙주인 병원체들이 워낙 많았어서 빠르게 지나갔다.


어쩌다 보니 운좋게 포토존을 지나게 됬다. 수많은 사람들이 계단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실 그 때까지는 지우펀의 모습이 생각과는 다름 모습이어서 약간의 실망을 하고 있었는데, 그쪽은 예뻤다. 끝까지 계단을 올라갔더니 초등학교가 하나 나왔다. 불빛이 정말 하나도 없이 음산해서 사원 같은건줄 알았는데 초등학교여서 놀라웠다. 공동묘지가 아니냐며 농담을 할 정도로. 다시 내려가는 길에 고양이가 한마리 있었는데 가까이 가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괘씸한 녀석.


시간상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할거같아서 정류장을 찾기로 했다. 우리형의 전자두뇌를 믿고 갈까 했으나 마침 다른 사람이 가게 주인에게 버스 정류장을 묻고 있었기에 훔쳐듣고 정류장으로 가는 길을 알 수 있게되었다. 정작 그 사람은 다른 길로 새고 우리만 가르쳐준 대로 갔더니 과연 정류장이 나왔다. 다수의 한국인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다가 목도 축일 겸 옆에 편의점으로 갔다. 우리형은 또 화장실에 갔다. 나는 알로에 음료를 하나 사서 마셨다. 사고 나왔는데 앉아있던 사람중에 없어진 사람이 있어서 그 새 지나간건가 했다. 계속 기다려서 한 대가 왔는데 만석이었다. 택시 정류장도 바로 옆에 있었는데, 만석 버스가 지나가자 택시 기사들이 협상에 더 박차를 가했다. 타이베이까지 40분 걸린다는데 아무래도 뻥 같았다. 거기 있던 한 무리의 여성 여행객 분들은 솔깃해서 택시를 타는 분위기였고 형과 나는 강 하류에서는 가망이 없을거같아 상류로 올라가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차도를 따라 가는데 정류장이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다시 지우펀 골목으로 가서 가로질러 올라갔더니 처음 내렸던 정류장이 나왔다. 처음 내렸던 정류장에서 위를 바라보면 또 정류장이 하나 있었는데,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그곳에 갔다. 갔더니 1026번 버스를 타기위한 줄이 엄청 길게 있었다. 다행히 다 타고도 좌석이 남을 정도로 있었다. 또 다시 끝없이 버스 타고 갔다. 가는 길에 formosa chang이라는 덮밥 체인을 볼 수 있었는데,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Zhongxiao fuxing 역에 도착하니 오징어덮밥이 생각나서 혹시나 아까 그 백화점이 열었나 해서 들어가보려고 했으나 11시까지 영업을 하는곳이라 더 못들어가게 막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지하철을 타고 종산역으로 향했다. 둘 다 아무생각없이 가다보니 한 정거장 뒤인 Shuanglian역까지 가버렸다. 지난 여행의 베이스 캠프로 오가던 곳이라 반갑기도 해서 그냥 숙소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지난번에 먹었던 비싸지만 맛있었던 밥집은 사라졌는지 늦어서 문을 닫았는지 없었고, 사기 당했던 과일트럭은 아직도 있었다. 음침한 분위기의 점집으로 추정되는 곳도 남아있었다. 여자랑 술마시지 않겠냐던 일본 남자는 없었다. 감동적인 맛의 치킨 생각이 나서 기억을 더듬어 그때 먹었던 치킨 집에 갔다.


<사진을 누르면 주소로 링크>


Two peck chicken이라는 곳인데, 기쁘게도 여전히 있었다. 알바가 약간 얍실하게 생겼는데 엄청 피곤해보였다. 우리가 중국어를 못하는걸 알더니 피곤하다는 태를 냈다. 메뉴는 쉽게 A, B세트가 있고, A는 큼직한 치킨이 크게 나오고, B세트는 안먹어 봤지만 조각으로 나오는 것 같았다. 둘 다 콜라가 있는 세트로 75TWD면 먹을 수 있다. 환화로 대충 3천원정도. 지난번 처럼 A세트를 먹었는데 역시 맛있었다. 숙소에 가서 먹으려고 참았는데 성희형이 옆에서 도발적으로 먹어서 중간에 먹고 말았다. 놀랍게도 알고보니 숙소랑 엄청 가까웠다. 다음 날도 갈까 고민했다. 들어가는 길에 이번엔 어떤 일본 아줌마가 술을 먹지 않겠냐고 했다. 귀찮아서 반응도 안하고 고개만 저었다. 밤이 되고 보니 우리 숙소가 있는 곳이 뭔가 유흥가의 중심이다. 낮에 봤을 때는 뭔지 몰랐는데 그 많은 문들이 다 Bar 였던 것 같다. 비밀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이 우리가 편하게 갈만한 Bar는 아닌것 같았다. 간판이 많아서 그런지 거기가 거기같고 항상 헷갈린다. 매번 헷갈렸는데 이날도 헷갈려서 한참 헤맸다.


새벽에 출출할까봐 숙소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샀다. 작년에 Zuoying에서 구입했던 감동의 해물 볶음면은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우리형 숙소 대문 여는걸로 놀려먹었는데 다음날 아침까지 속았다. 껠껠. 목 마를까봐 물도 같이 샀다. 숙소에서 라면을 먹으려고 했는데 커피메이커의 물 냄새가 심상치 않았다. 찜찜해서 주전자를 쓰려고보니 역시나 이상한 냄새가 났다. 그러고보니 냉장고에도 알수 없는 것들이 들어있었는데. 그래서 다른 것도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문제들이 하나둘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개수대에도 음식찌꺼기가 있고 부엌 테라스에는 누가 사용했었는지 행주가 걸려있었다. 테라스에 여자 샌들이 하나 있었는데 왠지모르게 섬뜩했다. 화장실에 가보았다. 수건은 얼룩덜룩하고 비누는 오래 써서 바짝 말라있었다. 가장 최악은 휴지박스에 갈색 무언가가 발라져 있었다. 누가 화장실에서 초콜렛을 먹었던 걸까. 제발 그렇길 바랬다. 


샤워를 먼저 내가 했다. 샴푸가 두 종류가 있었는데, 통 하나에는 다쓰고 나서 채웠는지 물이 채워져 있었다. 내가 모르고 그걸 썼다. 어이가 없었는데 좀 귀여워서 껄껄 웃었다. 샤워기는 물이 손잡이에서도 나왔다. 샤워를 하다가 눈에 물을 맞아서 깜짝 놀랐다. 가장 신경쓰였던 것은 샤워실을 천장에서 날 내려다보는 의문의 빨간 캐리어였다. 화장실 벽의 위쪽이 다락방 창고랑 유리벽을 두고 연결되어 있어서 창고 안쪽이 보였다. 다락방에서는 창고가 자물쇠로 채워져 있어 그 안을 볼 수 없었는데, 화장실에서는 그 안의 빨간 캐리어를 볼 수 있었다. 무서웠다. 형에게 샤워 시 주의사항들을 알려주었다. 그러고 나서 다락에 있는 잠자리로 올라갔다. 혹시나 해서 봤는데 베개와 깔개에도 머리카락과 비듬, 그리고 털이 있었다. 대충 혼자 잔해물(?)들을 치웠다. ㅋㅋ 뭔가 사람이 방금까지 살다가 우리때문에 나간거 같은 느낌이었다. 베란다의 여자 샌들과 현관의 남자 운동화로 짐작했을 때 만약 사람이 살다 나갔다면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가 살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베개가 두 개 였는데, 하나가 유난히 짧은 머리털과 비듬이 많았다. 고민하다가 비듬이 좀 적은, 여자가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베개를 선점했다. ㅋㅋㅋ 하지만 그걸 쓰기도 찝찝해서 결국 여분 티셔츠를 하나 꺼내서 베게 커버삼았다. 이불도 낡아서 쓰기 싫어 그날 입었던 티셔츠를 이불삼아 덮었다. 흉측한 빨간캐리어가 있는 창고 쪽을 형을 위해 남겨두고 먼저 누웠다 ㅋㅋ. 에어비앤비 욕을 하다가 졸려서 잤는데, 그날 집주인에게 항의하는 꿈을 꾸었다. 그 꿈에서 집주인이 그 집은 8개월간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집이라고 해서 충격받아 벌떡 일어났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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